게임 기획과 관련한 이론들의 소개와 그러한 이론을 실제 게임 제작 과정에서 필자가 어떻게 적용했는지(또는 적용하려 노력했는지)에 관해 소개하는 글을 시리즈로 함 써볼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게임이란 “기발한 영감" 또는 “직관"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 같다. 물론 이것이 잘못된 접근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왜냐면, 결국 게임 제작이라고 하는 것은 지극히 창의적인 활동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게임 기획의 상당 부분들은 이미 우리보다 먼저 수 많은 삽질을 해봤던 유능한 선배 기획자들에 의해 체계화되고 이론적으로 정리되어 왔다. 그러나 아무리 잘 정리된 이론이라 하더라도 실제 게임 제작에 반영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그리고 의도적으로 고려하고 고민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필자는 이러한 시도를 위한 첫 걸음으로 “Flow Channel”이라는 개념의 게임 이론을 New Sokoban 게임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적용해 보았는데, 그 결과는 대단히 긍정적이었다.
물론, 굳이 이와 같이 거창한 이름이 붙은 이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여러분들 중 상당수는 이미 직관적으로 유사한 개념을 체득하고 적용 해왔을 수도 있겠지만, 필자의 경우 이 개념을 처음으로 접한 것은 Jesse Schell 아저씨가 저술한 The Art of Game Design 이라는 책을 통해서 였다.
도대체 “Flow Channel”이 뭐지?
Flow Channel 이란 우리가 어떤 활동에 지속적으로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드는 심리 상태를 말한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flow를 잃게 되면 일반적으로 하던 행동을 멈추고 관심의 대상을 다른 곳으로 옮겨 버리게 된다. 그러므로, 게임 기획자로서 우리들의 궁극 목표는 유저들의 Flow Channel이 가능한 한 오래오래 지속되도록 유지하는 것이 될 것이다.
사실 이 개념은 인간의 활동과 관련된 모든 영역에 적용될 수 있으며, 어떤 활동을 하느냐에 따라서 “마음의 상태"를 유지시킬 수 있는 구체적 요인들이 달라질 뿐이다. 우리의 관심사인 게임 제작의 경우 다음과 같은 5가지 요인들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 난이도 vs 유저 숙련도
- 빡쎔 vs 지루함
- 이 모든 것들에 대한 밸런스
Flow Channel 의 상태들 (Jesse Schell의 "The Art of Game Design" 책에서 발췌)
위 그림에서 앞서 열거한 모든 factor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A”는 우리의 플레이어의 심리 상태를 나타낸다. 바람직한 유저 상태의 진행은 A1 에서 A4로 이동하는 것이 될 것이다. 어떤 유저가 A1 상태에 있다면 이제 막 플레이를 시작했기 때문에 우리 게임에 대해 아무런 지식 또는 숙련된 플레이 기술이 없는 상태이다. 따라서, 그 유저는 부족한 플레이 기술에 맞춰 충분히 낮은 수준의 난이도가 제공되어야 거부감이 없을 것이다.
만약, 해당 게임의 난이도 상승 속도가 유저가 게임에 적응하는 속도에 비해서 너무 느리다면 그 유저가 느끼는 상태는 A2로 바뀔 것이며, 이는 “지루함"의 영역에 해당 된다. 이 상황이 지속되면 해당 유저는 그 게임에 더이상 흥미를 느끼지 않게되고 아마도 접게 될 것이다.
반면, 게임 난이도가 유저의 숙련도 상승에 비해 너무 빠르게 상승한다면 플레이어의 상태는 “빡쎔" 영역인 A3로 변화될 것이며, 이 게임은 너무 어렵네… 라고 느끼게 된다 (물론 우리 개발자 입장에서는 유저의 성장 속도가 너무 느려서 답답하다고 생각하겠지만 ㅎㅎㅎ). 역시나 이 경우에도 유저는 Flow Channel을 벗어나게 되므로 해당 게임을 그만 두고 다른 곳으로 관심을 돌릴 가능성이 높다.
note: 만약 어떤 유저가 당신이 만든 게임을 너무 쉽다거나 어렵다고 느낀다면 언제나 항상 게임 기획자로서 당신이 잘못한 것이다. 플레이어는 언제나 옳다. 왜냐면, 각 플레이어는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지 않는 것 그리고 자신만의 Flow Channel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게임 기획자로서 여러분의 당면 과제는 가능한 많은 잠재 유저들의 flow channel 의 교집합 영역에 여러분의 게임이 위치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 뿐이다.
“빡셈”과 “지루함"은 모두 플레이어를 “좌절” 모드로 몰아간다. 그리고, 이 단어(좌절)는 게임 기획자로서 들을 수 있는 가장 최악의 평가가 될 것이다. 기획자로서 우리는 무슨 수를 쓰건 간에 유저들이 “좌절"하게 되는 것을 피해야만 한다. “좌절감"은 플레이어로 하여금 그 게임을 떠나게 만들며, 다시는 그 게임을 되돌아 보지 않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의 목표는 아래 그림에서 보이는 바와 같은 일정한 “흐름(flow)" 안에 유저들이 꾸준히 머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Flow Channel Line (Jesse Schell의 "The Art of Game Design" 책에서 발췌)
그러나, 저자인 Jesse Schell 아저씨는 The Art of Game Design에서 이러한 접근만으로는 부족하다 말하고 있는데, 단지 flow를 유지하는 것 만으로 충분하지 않으며 다음과 같은 플레이 리듬이 추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Flow Channel Wave (Jesse Schell의 "The Art of Game Design" 책에서 발췌)
앞선 그림에 비해 훨씬 흥미롭다. 유저들로 하여금 flow 안에 머물도록 할 뿐만 아니라 더 나은 플레이 경험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림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전반적인 게임의 난이도 상승은 유저의 성장 속도와 적절히 페이스를 맞추고 있다. 그러나 일정 주기로 난이도 상승폭의 완급을 조절하여 유저로 하여금 편안함과 도전욕구 모두를 반복하여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실제 예를 들어 설명하는 편이 보다 이해하기 쉬울 듯 한데, Halo와 같은 슈팅 게임의 경우 플레이어는 최초에는 기본 무기만 갖고 게임을 시작하게 되며, 초반에 만나는 적들의 경우 미숙한 조작과 기초적인 무기로도 쉽게 해치울 수 있다. 물론, 플레이를 지속해감에 따라 플레이어의 능력을 대폭 향상 시킬 수 있는 강력한 무기를 얻게 된다. Schell에 의하면 자칫 초보적인 기획 접근을 할 경우, 해당 시점에서 적들의 난이도 역시 즉각 높여서 향상된 플레이어의 능력에 걸맞는 강한 도전 대상을 즉시 제공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이 적의 난이도 역시 즉시 높여 버리는 것이 아니라 위 그림에서 보인 것 처럼 완급이 포함된 Waved Flow Channel을 따를 경우, 적의 난이도를 일정 기간동안 기존대로 유지하게 되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플레이어는 잠시 동안 강력해진 자신의 능력을 즐길 기회를 가질 수 있고 나아가 이로 인해 성장에 대한 동기부여가 강력해지는 상승효과를 얻을 수 있다. 다만 이 기간이 자칫 너무 길어져 플레이어가 “지루함" 영역에 들어가 버리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따라서, Waved Flow Channel을 통해 플레이어들이 지속적으로 적절한 flow를 유지할 수 있음은 물론이고 그 안에서 제공하는 리듬감을 통해 플레이 자체가 보상이되는 결과를 얻을 수 있게 된다. 만약 이와 같이 플레이 자체가 유저에게 보상으로 동작할 수 있다면, (이론적으로) 그 유저는 해당 게임을 접지 않고 ‘영원히' 플레이를 지속하게 될 것이다. 이 것이야 말로 기획자로서 궁극의 로망이 아니겠는가!
물론 이게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실제로 플레이어를 Waved Flow Channel 안에 머무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대단히 대단히 어렵다. 그렇긴 하지만, 필자는 New Sokoban을 제작할 때 이러한 이론을 적용하려 나름 최대한 노력 하였으며, 그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New Sokoban 의 Flow Channel
만약 누군가 필자에게 New Sokoban에 대해 자랑스러운 부분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퍼즐 설계와 전반적인 난이도 밸런스라고 말하고 싶다. 혹시 이와 관련하여 조금 더 자세한 것을 알고 싶다면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필자는 각 퍼즐의 난이도를 손보고, 전체적인 난이도 곡선을 밸런싱하기 위해 상당히 많은 시간을 투자 했으며, 그 과정에서 Waved Flow Channel 개념을 적용하기 위해 노력했다. 현재 버전의 경우 총 50개의 퍼즐을 이용하여 2개의 월드를 구성하였으며, 향후 2개의 월드를 더 추가할 예정이다.
각각의 월드는 새로운 특징을 갖고 있는데, 퍼즐 해결을 위해 플레이어로 하여금 그때 까지 익혀왔던 기술들과 공략 방법이 아닌 전혀 새로운 접근을 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각 월드의 초반 퍼즐에 비해 막판 퍼즐은 훨씬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예를 들어, 22번째 판이 23번째 판보다 반드시 쉬워야 할 필요는 없다. 또한, 하나의 월드를 클리어하고 다음 월드의 퍼즐을 시작할 때, 플레이어는 신규 월드에서 제공하는 새로운 규칙을 익혀야 하기 때문에 퍼즐의 난이도를 다소 낮추었다. 필자는 이러한 패턴을 각 월드 별로 25개의 퍼즐단위로 반복하여 배치 했으며, 월드 사이에도 동일한 규칙을 적용했다. 말하자면 난이도 배치에 일종의 프랙탈 패턴을 적용한 것이다. 만약, New Sokoban에 적용된 Waved Channel Flow를 그림으로 표현해 본다면 대략 아래와 같은 형태가 될 것이다.
Fractal Flow Channel, extended from Waved Flow Channel
각 월드를 구성하는 퍼즐은 Waved Flow Channel의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신규 월드의 초반 약 2 ~ 4개 퍼즐의 난이도는 무지 낮게 설정되어 있는데, 이는 새로운 규칙에 대한 일종의 튜토리얼 목적으로 제공하기 위한 것이며, 플레이어가 새로운 규칙을 충분히 익혔을 것으로 예상되는 시점부터 난이도는 즉시 상승하기 시작한다.
이런 형태의 Fractal Flow Channel은 필자가 만든 New Sokoban 게임에서 대단히 큰 효과를 발휘했는데, 플레이어들이 새로운 것을 손쉽게 습득하고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뭔가 다른 공략 방식이 필요한 새로운 퍼즐을 소개했을 때, 다음 퍼즐을 살짝 더욱 쉽게 하여 플레이어로 하여금 새로운 퍼즐 공략 기술을 마스터 했으며 그로 인해 “파워업!” 했다는 느낌을 전달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도중에 임의로 난이도를 대폭 낮춘 퍼즐을 배치하기도 했는데, 유저들에게 “이봐! 점차 퍼즐이 어려워지고 막힌다고 너무 신경 쓰지 마. 어쩌면 다음 퍼즐은 보다 잘 해결할 수 있을 지도 모르잖아?" 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이는 묵시적인 형태의 메시지이고, 플레이어가 실제로 그렇게 인지할 필요도 없다. 그렇지만 상당히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은 틀림 없다.
끝으로, 이와 같이 플레이 도중 간헐적으로 만나게 되는 “쉬운 퍼즐들"은 플레이어에게 일종의 “정신적 휴식”을 제공할 수 있다. 이러한 “정신적 휴식"의 제공이 중요한 이유는 유저들이 게임 중 “피로감"을 느끼게 될 경우 아마도 플레이를 중단하게 될 것인데, 이 과정이 반복될 경우 해당 게임에 부담을 느껴 점점 멀어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
Flow Channel 이론은 필자와 New Sokoban의 개발과정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Schell의 책을 처음 읽었을 때, 그 개념이 ‘빡'하고 꽂혔던 이유는 필자 스스로 수 많은 게임을 플레이하는 과정에서 실제로 느꼈던 경험에 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고 여러분이 만들고 있는 게임에 적절히 적용하기 위해서는 깊은 고민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기 바란다.
다음 문장으로 이번 글을 마치려 한다.
The Flow Channel 개념은 대단히 강력한 것이다. 여러분이 제작하는 게임에도 적용해 보길 강추한다!
역: 2013 / 12 / 12 Iron Sm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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